오늘의 역사

독립문

1897년 11월 20일 독립문이 완공되다.


독립문 설립한 배경

위키백과에 따르면 아래와 같이 되어 있다.

위키백과 - 독립문

독립협회가 중심이 되어 조선이 청나라의 책봉 체제에서 독립한 것을 상징하기 위하여 영은문을 무너뜨리고 그 터에 지은 문으로 서재필의 주도로 건립되었으며, 서재필의 원작을 배경으로 (아파나시 세레딘사바틴)이 설계, 시공했고, 그 현판은 김가진의 작품이다.

그런데, 경향신문에서는 다른 독립문에 대해 부정적인 기사가 보인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이완용은 왜 독립문 글씨를 썼을까

우선 독립문의 설립 목적은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청나라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이 있던 자리에서 세우고, 영은문의 주춧돌을 독립문의 앞쪽에 놓이도록 배치하였다.

국가보훈처 공식 블로그에는 청나라에 대한 독립이 아닌 전세계를 향한 독립의 의미라는 내용으로 소개가 되어 있다.

독립문 어디까지 가봤니? 독립문이 가진 깊은 의미 속으로

1896년 4월 7일 독립신문의 논설에서 일본은 조선이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도운 나라처럼 언급되어 있다. 청일전쟁으로 조선이 자주 독립했다는 것이다.

조선 사람들은 일본이 조선을 위해 한다는 뜻을 자세히 모르는 것이다… 일본이 청국과 싸워 이긴 후에 조선의 분명한 독립국이 되었으니 조선 백성이 일본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있을 터이나…

1895년 10얼 8일 경복궁에서 명성황후 민씨가 일본에 의해 살해되는 을미사변이 발생한지 반년만에 독립신문에서 일본이 조선을 위한다는 이야기를 언급한 것은 내가 배워왔던 독립신문이 맞나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독립신문은 아마도 조선에서 청나라의 영향력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고, 조선을 서양과 같이 근대화하는 것이 지상최대의 목표였던 것 같다. 을미사변을 일으킨 일본에 대해서도 우호적인 논조를 이어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용을 다시 검토하고 확인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다음에 독립협회에 대해서 내용이 나오면 한 번 조사를 해 봐야 겠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독립문은 어쩌면 시작은 진정한 독립에 대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3.1운동에 독립문에 태극기를 꽃아 놓은 일이나 해외 모금 운도에서 독립문의 사진을 이용한 일들을 보면 시간이 가면서 민중들에게는 일제에 대한 독립의 아이콘이 되어 온 것 같다.

물론, 일제는 독립문을 수리하는데 당시 4100원을 사용할 정도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활용하고자 하였다.

독립문이 우리에게 자긍심을 갖게하는 그런 역사인 줄 알고 있었는데, 그 속에 우리 굴곡의 역사를 모두 담고 있는 건축물이었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

Written on November 20,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