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 일기 - 가치관의 탄생

가치관의 탄생

  • 저자 : 이언 모리스
  • 역자 : 이재경
  • 출판사 : 반니
  • 읽은 기간 : 2018. 11. 1 ~ 2018. 12. 14

책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이후 이언 모리스 책을 계속해서 읽으려 하고 있다. 가치관의 탄생은 최근에 나온 책이라 해서 읽어 보았다. 그냥 가볍게 읽으려 했기 때문에 인상에 남는 문장이나 생각들을 기록하지는 않았다.

전체적으로 본인의 연구 결과(에너지 획득량, 사회발전지수)를 이용해서 전작(왜 서양이 지배하는가)을 보충하는 느낌이다.

물론, 책의 시작은 그리스에 본 자신의 문화적 충격을 바탕으로 자신이 왜 그런 충격을 받았는지를 자신의 연구 결과들로 설명하려 한다.

인류의 역사를 크게 수렵, 농경, 화석연료(영어로 하면 모두 앞 글자가 F로 시작한다.)로 구분하고, 각 시대의 에너지 획득 방식이 사회 구조와 가치관 형성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수렵채집인들은 수렵 채집에 맞추어 자신들의 가치관을 형성했다고 주장한다. 수렵 채집 생활에 따른 남녀의 관계, 부족내 수평적 지위, 잦은 폭력 등이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농경민은 농업혁명(유발하라리는 사기라고 “호모 사피엔스”에서 언급했다고 하던데…)을 통한 생산성 향상과 조직화로 사회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주위의 수렵채집 사회를 농업 사회로 바꿔 갔다(물론, 일본이나 멕시코와 같은 지역에서는 풍부한 해양 자원으로 오랫동안 수렵채집을 유지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아마도 한반도도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잉여 생산물과 함께 농경을 위한 토지, 가축 등이 사유화되면서, 경제력에 대한 상속이 가능하게 된다. 이는 신체 구조적으로 농경사회에 적접한 남성의 사유 재산 강화와 이를 자신의 유전자를 갖는 자녀에게 상속을 보장 받기 위해서 여성의 순결을 강조하게 된다는 부분도 흥미로웠다. 농업 사회는 규모의 증가와 함께 위계 질서의 발생, 이를 통한 폭력의 감소, 그리고 지배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지배계층의 신격화 등으로 계급과 역할이 엄격히 구분된 형태로 진화하고, 이를 아그라리아라는 개념으로 농경사회의 가치관을 설명하는 것도 흥미롭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관을 지배계층이 아닌 하층민들도 공유하고 자신의 가치관으로 받아들였다고 하는 것도 흥미롭다.

하지만, 이 책에서 하층 계급인이 농경 사회의 논리를 체득하고 받아 들였다는 사실을 쉽게 인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p115

1760년대 야콥 구예 Jakob Gujer라는 농민이 짧게나마 농경 사회에 이름을 날렸다. 그는 본명보다. 그는 본명보다 ‘클라인조그’Kleinjogg(선한 조그)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다. 의사이자 사회개혁가였던 J. K. 히르첼이 웅변과 야심을 겸비한 이 농부를 발굴해 세상에 ‘농촌의 소크라테스’로 홍보했다. 홍보는 대성공이었다. 루소는 클라인조그를 찬양하는 시를 읆었고, 괴테는 클라인조그가 촌부의 지혜를 설파하는 취리히 시골로 성지 순례를 떠나기도 했다. 클라인 조의 질박한 덕담은 괴테뿐 아니라 계몽 귀족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덥혔다. 클라인조그는 1765년 뷔르템베르크 대공 루트비히 오이겐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각자의 본분에 충실한 것이 피차 선을 행하는 길입니다. 대공과 귀족이 할 일은 우리 농민에게 할 일을 명하는 것입니다. 국가를 위한 최선이 무엇인지 고민할 시간이 있는 쪽은 그쪽이니까요. 우리 농민이 할 일은 귀족의 결정에 복종하고 근명과 충성으로 보답하는 것이죠”

클라인 조그가 선전하는 호혜적 신분질서를 우리는 ‘올드딜’Old Deal이라 부른다. 올드딜은 산업시대에 각종 뉴딜New Deal이 등장하기 전 농경 사회를 지배하는 사회계약을 뜻한다.

이 외에도 예기의 내용(p116), 히시오도스(p116), 라가시의 우루이님지나Uru’inimgina 왕의 법전(p117)의 예가 있다.

작가도 언급한 것과 같이 이는 순환논리이다. 먼저 체계가 만들어지고 이를 강화하기 위한 논리이다.

과연 농경사회의 하층 구성원들이 이 순환논리를 쉽게 받아 들였을까?에 대한 의문이 있다. 물론, 한 사회 내에서 체념하는 경우 쉽게 동조하고 받아 들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또한, 계층화된 사회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지 않다면 자신보다 낮은 계층을 보면서 현재 자신의 계층에 만족할 수도 있고, 이를 바탕으로 상위계층에 잘 보이기 위해(클라인조그처럼) 지배계층의 논리를 빨리 받아 들여 현재 자신의 계층내에서의 권력과 이익를 강화하는 쪽으로 노력을 했을 수 있다. 역사에서 많은 경우에 이러한 지배 관계를 쉽게 받아 들였다는 기록도 많지만, 지배 관계를 흔들리는 경우에는 이를 부정하는 모습도 자주 보여준다. 이미 진나라 시대에 진승이 난을 일으키며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라는 질문을 던졌고, 이러한 질문이 진나라에서만 나왔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지배계층이 무너져도 동일한 지배 구조를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지만, 이는 다른 지배 구조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 아그라리아의 구조를 받아들인 것이 아닐까 한다. 청나라의 태평천국의 난에서 한족이 만주족에 충성하면서 난을 진압했지만, 신해혁명때는 왕조가 무너지고 공화정이 세워지는 변화가 몇 십년만에 일어난다. 아마도 청나라의 국력이 쇠하고, 다른 왕조가 세워질 수도 있었지만, 공화정이 세워진 것은 당시 중국에서 새로운 정치체재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농민사회가 이렇게 아그라리아의 가치관을 받아들인 것은 결국 다른 가치체계를 모르기 때문이있다. 아마도 알았다면 좀 더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 예외로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을 들 수 있지 않을까? 따라서 이언 모리스가 언급한 에너지 획득 방식으로 에너지 획득량이 변하고 가치관이 달라지는 것은 어쩌면 상관 관계가 있다는 것이지 원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현대의 화석 연료 시대는 인더스트리아로 표현하고 있다. 엄격한 위계질서가 사라지고, 남녀의 권력관계가 평등하게 바뀌면서, 정부의 역할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폭력이 감소하는 인더스트리아의 시대에서 아그라리아의 가치관은 이미 생명을 다했다. 이의 예로 말랄라 유사프자이를 들고 있다. 탈레반이 배움에 대한 열정을 가진 소녀를 총격으로 저격하는 사건에 대해 현재의 인더스트리아 가치관으로 옳지 않다. 이 표현에서 느껴지는 부분은 아그라리아에서 이러한 사건이 이해될 수도 있다는 것으로 들린다. 물론, 저자는 거부하고 있지만, 어차피 이 책의 시작이 그리스에서 게오르기오스씨가 자신은 나귀를 타고 가면서 자신의 부인은 걸어가게 한 것에 충격을 받은 이유에 대해서 시작이었으니, 결과적으로는 말랄라 유사프자이에 행해진 폭력에 대해서도 자신은 인더스트리아에 있으니 충격을 받으나, 아그라리아에 살고 있는 탈레반에게는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는 의미로 들린다.

인더스트리아에 살고 있는 우리가 평등과 자유, 행복 등 인간이 기본적으로 누려야할 가치라는 것이 과연 산업혁명 이후 인간에게 나타난 가치인가라는 질문에 나는 좀 회의적이다. 본질적 가치가 없다라는 것에 동의하고, 인간의 가치가 진화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에 동의히지만, 인간이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친 기간이 전체 진화의 기간보다 매우 짧다고 본다면, 인간이 생각하는 가치의 기저에 농경사회나 산업사회의 모습에서 드러나지 않는 가치관이 있지 않을까? 어쩌면 유전자에 의해 프로그래밍된 가치관(?)이 있지 않을까? 물론 농경사회와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이러한 기저도 그에 맞춰 변화하겠지만, 어쩌면 농경사회는 그러한 기저를 변화시키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을 수도 있다라는 생각이든다. 그렇기에 인간이 쉽게 에너지와 지식을 획득할 수 있는 산업사회에서는 오히려 인간이 오랜 시간 보유하고 있던 수렵채집 사회에서 보유하고 있던 가치의 기저로 돌아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우리는 농업사회보다 원시적 사회에 대한 갈구가 더 큰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과거 농업 사회에 비해 사회적 단절이나 차별이 감소하고 있고, 이를 대다수 사람들이 지지하는 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 단지 에너지 획득량이 많아져서 그러한 요구가 증가했다기 보다는 수렵 사회에서부터 인류의 가치 기저에서 발생한 가치관으로 돌아 가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치관의 탄생이라는 제목이 썩 어울린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가치관을 단지 도덕적인 관념이라고만 생각할 수 있는데,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인류가 살아 남고,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진화적 선택이라는 개념은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흥미롭게 재미있는 책인 건 분명하다. 폭력에 대한 관계에 대해서 서술하는 부분도 흥미로운데, “전쟁의 역설”이라는 책도 읽어 봐야 겠다.

Written on December 29, 2018